[20년 만에 바뀌는 USB 규격] 더 편리한 USB-C가 온다… 술렁이는 IT 업계·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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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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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구글의 스마트폰 넥서스5X를 구입한 직장인 김모(39)씨는 충전케이블 때문에 당황했다. 당연히 이전에 쓰던 충전케이블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출근했는데, 규격이 달라서 호환이 안 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부랴부랴 인근 휴대전화 대리점과 액세서리 판매점을 뒤졌지만 넥서스5X용 충전케이블은 구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오후부터 스마트폰을 쓰지 못하는 불편을 겪었다. 김씨는 “집과 회사 등에서 충전하려면 케이블이 몇 개는 필요한데 예전에 쓰던 걸 하나도 못 쓰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새로운 USB 규격 내년 도입 본격화 예상=김씨가 당황하게 된 건 구글이 넥서스5X의 충전 규격을 기존 마이크로USB에서 USB 타입 C(이하 USB-C)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넥서스5X와 함께 나온 넥서스6P도 USB-C를 쓴다. 구글이 레퍼런스폰인 넥서스의 충전 규격을 바꿨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레퍼런스폰은 구글이 다른 제조사들이 참고하도록 규격을 제시하는 제품이다. 넥서스에 채택된 기술이나 규격은 다른 제조사들엔 ‘표준’이 된다. 지금까지 모든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마이크로USB를 규격으로 쓴 것도 구글이 처음부터 규격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에 나올 삼성전자 갤럭시S7에 USB-C가 채택될지 관심이 쏠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갤럭시S7에 USB-C가 탑재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채택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전 세계 스마트폰 1위이자,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사실상 표준 업체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USB-C를 도입한다면 변화는 한 번에 급속히 이뤄질 수 있다.

반면 삼성전자가 기존 충전케이블과 호환성을 이유로 도입 시기를 늦출 가능성도 있다. 구글 넥서스5X·6P를 제외하고 USB-C를 쓰고 있는 스마트폰은 중국 원플러스의 스마트폰 원플러스2 정도여서 도입이 시급하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왜 혼란스럽게 바꿀까=그렇다면 구글은 왜 불편을 감수하면서 규격을 바꾼 걸까. 이는 USB의 도입 취지인 ‘하나의 케이블’에 대해 업체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USB는 ‘Universal Serial Bus(범용 시리얼 버스)’의 약자다. 중요한 건 범용성을 강조한 점이다. USB는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IBM, HP 등 당시 대형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머리를 맞대서 1994년 만든 규격이다. 그 이전까진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연결하는 케이블 규격이 모두 달라서 불편이 컸다. 프린터, 키보드, 마우스 등 컴퓨터에 연결할 건 많은데 케이블 규격은 각각 달랐기 때문이다. 케이블 규격을 통일하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USB의 탄생 계기가 된 것이다.

USB는 96년 버전 1.0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상용화가 시작됐다. 최근까지 USB 3.0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됐는데 그동안 속도는 빨라졌지만 규격은 일정하게 유지돼 왔다. 정확히 말하면 USB 규격은 총 6가지다. 흔히 USB라고 하면 떠올리는 직각 모양의 단자는 타입A라고 불린다. PC, 노트북 등에 대부분 타입A 단자가 있다. 스마트폰 충전단자로 사용되는 마이크로USB는 마이크로B타입으로 명명된다.

이밖에도 타입B, 미니A, 미니B, 마이크로A 등의 규격도 있다. 예를 들어 PC와 스마트폰을 연결한다고 하면 케이블 한쪽 끝은 타입A, 다른 쪽은 마이크로B 규격을 쓰는 것이다. 현재는 이 두 가지를 제일 많이 쓴다.

그런데 2013년 USB가 3.1로 업그레이드되면서 기존 A, B 외에 타입C 규격이 새로 추가됐다. USB-C의 가장 큰 특징은 앞뒤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A, B 타입은 방향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꽂아야 하지만 USB-C는 방향에 상관이 없이 꽂으면 된다.

PC부터 스마트폰까지 모든 규격 통일=구글뿐만 아니라 애플, 인텔 등 대부분의 IT 업체들이 USB-C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업체들이 USB 도입 20여년 만에 새로 생긴 USB-C로 몰리는 건 USB 3.1이 되면서 USB만 있어도 모든 걸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USB 3.1은 전송속도가 10Gbps, 출력은 100W까지 늘었다. HD 화질 영화 한 편을 1초 만에 보낼 수 있는 속도다.

지금까진 영상 신호 같은 고용량 데이터는 USB로 전달하기엔 버거워서 별도의 영상 전송 규격을 사용했는데 이제는 USB로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LG전자는 USB-C로 노트북과 연결해 화면을 볼 수 있는 모니터를 내놓기도 했다.

출력이 높아지면서 외장하드 같은 주변 기기를 USB로 연결할 때 별도의 전원도 필요 없게 됐다. 더 다양한 기기를 간편하게 연결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USB-C는 앞뒤 구분이 없고 단자도 작기 때문에 스마트폰부터 PC까지 다양한 기기에 쓸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업체들은 USB-C 도입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미 일부 스마트폰뿐 아니라 애플 신형 맥북, 구글 크롬북 픽셀2, 델의 노트북 XPS 12·13·15, HP 파빌리온2 등 노트북에 USB-C가 적용되고 있다. 인텔은 자체 데이터 전송 규격인 선더볼트3를 USB-C 단자로 통일시켰다. 독자 노선을 고집하던 애플이 USB-C를 앞서 채용한 것이나, 자체 규격이 있음에도 USB-C 진영에 합류한 인텔을 보면 업체들이 어느 때보다 표준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년부터 USB-C 도입이 본격화할 것은 분명하다. 물론 당분간은 기존 USB도 계속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두 규격이 혼재되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건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 애플이 아이폰5부터 기존 30핀 충전단자를 포기하고 라이트닝 케이블을 도입했을 때도 초기에 불만이 상당했다. 30핀 규격으로 된 각종 액세서리가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PC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가 애플 제품 사용자에 비해 숫자가 훨씬 많기 때문에 혼란은 애플이 라이트닝 케이블로 전환했을 때보다 더 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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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김준엽 기자입니다. 문화체육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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